인권위 권고에 인사처 “올해 안으로 대안 마련”

신희진 기자 lenore@psnews.co.kr

이제는 시험 중 화장실을 가더라도 시험을 치를 수 있게 된다.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는 공무원 임용 필기시험 중에 응시자의 인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화장실 이용을 허용하도록 인사혁신처(이하 인사처)와 행정자치부(이하 행자부)에 권고했다. 이에 따라 인사처는 올해 안으로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일생을 좌우할 수 있는 수험생들에게 ‘생리현상’은 합격을 위해 넘어야 할 또 다른 산이다. 1문제만 틀려도 당락이 좌우되는 공무원시험에서 생리현상으로 인해 집중력이 저하되면 공무원의 꿈은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아무리 생리현상이 급해도 지금까지는 공무원 시험 중 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었다. 국가직 채용시험 소관부처인 인사처와 지방직 채용시험 소관부처인 행자부가 시험 시작 이후에는 퇴실을 할 수 없다고 못 박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순조롭게 문제를 풀고 있더라도 급작스러운 생리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화장실을 이용하면 그 순간 시험 포기가 된다.

퇴실하지 않더라도 생리현상을 해결할 수 있게끔 인사처와 행자부에서는 냄새가 나지 않게 특수 제작된 간이소변기 및 접우산을 이용해 응시자가 시험실 뒤편에서 소변을 볼 수 있도록 조치하고 있지만 모두에게 공개된 장소에서 소변을 보면서까지 시험 중 발생한 생리현상을 해결하려는 응시생은 거의 없으며, 인간의 존엄성을 해친다는 비난도 면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시 인권센터장인 김 모 씨는 현재 대부분의 공개필기시험에서는 응시자들의 화장실 사용을 허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와 지자체가 실시하는 공무원시험에서만 응시자들의 화장실 사용을 제한하고 있는 행위는 인권침해로 부당하다고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인권위에서는 피해자 및 피해시설이 구체적으로 특정되어 있지 않다며 진정을 각하했지만, 공무원 임용을 위한 필기시험 중 응시자의 화장실 출입제한이 헌법에서 정하고 있는 인격권 등 기본권을 침해할 여지가 있다고 보고, 제도개선 필요 여부를 검토했다.

인사처와 행자부에서는 시험 중 화장실 이용을 허락할 경우 부정행위를 완벽하게 차단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다른 응시자의 시험응시 몰입을 방해하며, 정해진 시험시간이 성인 평균 소변주기보다 짧아 수험생의 생리현상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또한, 통상의 소변주기가 짧은 임산부, 과민성대장(방광)증후군 환자, 시험시간이 연장되는 중증장애인에 대해서는 신체조건 등을 고려해 예외적으로 시험 중 화장실 이용을 허용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특히, 인사처는 “본인의 속옷·신발 등에 컨닝페이퍼를 숨겨두었다가 화장실 사용 중 이를 이용하는 부정행위를 현실적으로 적발하기 어려우며, 이를 예방하기 위해 과도한 몸수색을 하거나 대·소변시 감독관이 밀착 감시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면 또 다른 인권침해 논란을 발생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응시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91.7%의 응시자가 화장실 이용금지 원칙에 찬성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인권위는 인사처와 행자부의 주장이 응시자 부정행위를 방지하고 시험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한 조치로 일견 이해될 수 있지만, 화장실 이용을 제한하고 시험실 뒤편에서 소변을 처리하게 하는 것은 헌법 제10조에서 보장하는 인격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또한, 다수가 응시하고 엄격한 시험관리가 요구되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의 경우, 수험생의 화장실 이용이 허용되고 있는 점 등도 인권위 판단에 힘을 실어줬다.

인권위의 이 같은 권고에 인사처는 “시험의 직접 당사자인 수험생이 이 사안에 대해 민감한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라며 “시험의 공정성·안전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수험생의 인권도 보호될 수 있도록 올해 안에 합리적 대안을 만들겠다”라고 밝혔다.

참고로, 수능시험의 경우 복도감독관이 휴대용 금속탐지기로 화장실을 이용하려는 수험생의 소지품을 검사하며, 동성의 감독관이 화장실에 함께 가 이용할 칸을 지정하고 있다.

<출처: 공무원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