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이후 일제의 ‘문화 통치’가 진행되던 1921년의 식민지 조선에 도착한 20대 중반의 문학청년 우치노 겐지는 철로 개발과 연계된 계획 도시로 성장 중이던 대전에서 대전중학교 교사로 부임하게 됩니다. 일 년 뒤에 그는 문학 결사 ‘경인사’를 결성하고 당대 한반도 문학 경향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는 시가 전문 잡지 『경인』을 창간합니다. 그리고 1923년이 되자 그는 2년여 동안의 문학 활동을 결산하는 첫 시집 『흙담에 그리다』를 발표합니다. 그런데 『흙담에 그리다』는 조선총독부에 의해 발간 금지 처분을 받습니다.
『흙담에 그리다』에는 문화 통치 중인 일제가 자국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발간 금지를 명령하는 이례적인 조치를 취할 정도로 그들을 불편하게 하는 이유가 분명히 있었습니다. 조선에서의 삶, 조선인들의 모습을 시로 구현한 『흙담에 그리다』는 일본인이 쓴 시집임에도 조선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일본어와 한국어가 함께 쓰이며, 심지어 한반도의 풍광을 핍박받는 민중의 고통과 연결하고 해방을 독려한 것입니다.